맛있는 요리/먹고 마시는 것들의 역사

팝콘, 추억이 솔솔 피어나는 팝콘

율이파더 2021. 4. 9. 06:33
SMALL

 

팝콘, 추억이 솔솔 피어나는 팝콘


 

어릴적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5일장이 열렸다. 내 나이 6살때인 걸로 기억하는데 그날도 장날이라 아침부터 어머니는 장에 갈 준비로 바쁘셨다. 나는 그날 따라 어머니를 따라 장에 가겠다고 졸랐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마지못해 당시 3살이던 동생을 외할머니댁에 맞기시고 내 손을 잡고 장을 나섰다. 그때만해도 도로포장이 않되어 있어서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 도로를 1km정도 걸어야 했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만 시내에 있는 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어머니를 따라 장에 간다는 즐거움에 마냥 신이났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시골 5일장은 나에겐 신세계였으며 별천지였다. 어머니가 사준 눈깔 사탕을 입에 물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을 구경하는 동안은 세상을 다 얻은 듯 좋았던 거 같다. (그래서 지금도 마트나 백화점을 가면 그렇게 좋은....) 그렇게 시장을 돌아다니던 중 어디선가 ‘뻥이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어머니를 졸라 그곳으로 갔었나 보다. 거기엔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떤 커다란 기계와 (그땐 뻥튀기 기계가 어찌나 거대해 보디던지) 땀을 뻘뻘흘리던 아저씨가 있었고 주변에 나만한 어린 꼬마들과 어른들이 둥그렇게 둘러 서 있었다. 기계가 빙글빙글 돌다 어느 순간 멈추었고 옆에 서 있던 아저씨는 짧은 쇠막대기를 그 기계의 콧구멍 같은 곳에 (그때는 그걸 왜 콧구멍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끼우고 뻥이요. 하며 뒤로 힘차게 재끼는 것이었다. 그 ‘뻥이요’ 라는 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양 그 기계는 아가리를 ‘뻥’하며 벌리고는 하얗고 먹음직스러운 튀밥을 뱉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기계속에다 옥수수를 넣고 돌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돌렸을까. 어머니는 두손으로 내 귀를 막아주셨다. 아직도 어머니의 그 따스한 귀막음을 잊을 수가 없다. 잠시 후 하얀 벚꽃송이 같은 팝콘들이 커다란 망태기 안에 가득찼다. 어머니는 그날 뻥튀기 장수에게서 팝콘을 한자루 사 주셨다. 집에 가서 아버지랑 동생이랑 같이 먹자는 어머니의 말씀에도 조금만 먹겠다며 때쓰던 생각이 난다.
팝콘이란 말은 그때는 몰랐다.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그게 팝콘이었구나 했었다. 그냥 그땐 그런류의 먹거리는 모두 통틀어 튀밥이라고 했었다.

팝콘은 원래 아메리카 인디언의 발명품이라고 한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을때 그곳의 원주민이었던 마사소이드족 추장인 콰테쿠이나가 튀긴 옥수수를 가지고 왔던 것이다. 마사소이드족은 영국 이주민을 만날 때마다 팝콘을 가져왔다. 팝콘이 평화의 표시였던 셈이다. 초기 이주민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에게 옥수수재배법과 팝콘 만드는 법을 배웠다.



팝콘은 1885년 시카고에 사는 찰스크레테라는 사람에 의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바로 팝콘 기계를 개발 했기 때문이다. 팝콘 옥수수는 주로 미국중서부 지방에서 재배했는데, 1890년 이후 팝콘이 유행하면서 옥수수를 재배하던 농부들이 큰돈을 벌었다. 그래서 한때 미국에서는 옥수수를 ‘초원의 황금’ 이라 불렀다고 한다.



오늘 날에는 극장이나 길거리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팝콘이지만, 내가 어릴적만해도 장날이나 되야 먹을 수 있는 먹거리였다. 그것도 말린 옥수수를 가져가야만 먹을 수 있었다. 세월따라 먹거리도 바뀌고 입맛도 바뀌지만 아직도 극장에 가서 팝콘을 먹는 걸 보면 이 입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나 보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