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먹고 마시는 것들의 역사

고추장, 전쟁이 가져다준 매운맛 고추장

율이파더 2021. 4. 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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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전쟁이 가져다준 매운맛 고추장

 

 

 

가을 추수가 끝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머니께서는 슬슬 고추장 담을 준비를 하셨다. 어릴때야 매운게 싫고 해서 고추장 담는게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고 입맛도 변하다 보니 어머니께서 담아서 보내주시는 고추장이 그립고 또 기다려 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추장과 된장은 어떤 의미일까. 봄철 파릇하게 돋아난 열무잎을 뜯어서 밥에 올리고 고추장 한숟갈, 그리고 참기름 몇 방울이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을 정도로 맛이 좋다. 나도 입맛이 없거나 매운맛이 그리울때면 그렇게 열무잎을 뜯어서 고추장넣고 쓱쓱비벼서 먹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추장과 된장은 없어서는 않될 먹거리 중에 하나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이런 고추장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 전북 순창에서 만드는 순창 고추장인데,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특징이라고 한다. 순창 고추장에 관해 많은 속설이 떠도는데, 그중 하나가 순창 고추장이 조선시대 왕에게 바치던 진상품이었다는 것이다. 고려 말 이성계가 평소 존경하던 고승 무학대사를 만나려고 순창으로 내려갔다. 길을 걷다 우연히 농민들이 고추장에 밥을 비벼먹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 밥이 너무 맛있어 보여 한 입 얻어먹었다고 한다. 그 맛에 반해버린 이성계가 왕이 된 후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순창 농민들에게 매년 고추장을 진상하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순창에서 고추장을 만들었다는 내용은 조선 중기인 1740년 이표라는 사람이 지은 요리책 <수문사설> 에서야 비로소 처음 언급되기 때문이다.

고추장을 만드는 재료인 고추는 신대륙인 멕시코와 페루에서 자랐던 작물이었다. 고추는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쿠바와 아이티 등 서인도제도에 상륙한 콜럼버스 일행이 그곳 원주민들이 음식에 넣어 먹는 고추를 발견하고 이를 유럽으로 가져간 것이다. 당시 아시아 나라들과 무역을 하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상인들이 고추를 인도와 일본 등지로 전파했고, 인도에서는 1500년에 고추가 재배 되었다. 일본에서는 1542년 규슈의 영주인 오오토모 요시시게 라는 사람이 포르투갈 선교사에게서 고추를 선물로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고추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일본에 전래된 고추가 한국으로 전파된 시기는 임진왜란때였다. 그 시기에 부산을 비롯한 경남해안 지대에 왜군이 오래 주둔했는데, 별로 반기지는 않았지만 왜군과 함께 살면서 이들의 문화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고추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추가 처음부터 조선 사람들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 이후인 1614년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 에서는 고추를 가리켜 “남만의 풀로 독이 있으며 일본에서 처음 전파되어 왜개자라고 이름 붙였다. 지금은 그 종자가 주점에 이따금 보이며, 그 맛이 맵고 독하여 많이 먹는 사람은 죽는다.”고 부정적으로 표현했다. 1670년 경북 안동의 정부인 안동 장씨가 쓴 요리책인 <음식다미방>을 보아도 고추를 이용한 요리나 고추장이 들어간 음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먹는 고춧가루로 버무린 배추김치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이다. 놀랄 분도 있겠지만, 의외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추가 들어오고 나서도 우리 조상들은 여전히 무로 만든 동치미나 오이를 소금에 절인 짠지, 파김치 등을 먹고 있었다. 그러다 남쪽 전라도 지방에서부터 고춧가루로 버무린 김치를 만들어 먹은 것이다. 전라도는 다른 지역보다 날씨가 덥고 습해서 음식에 소금을 많이 넣지 않으면 쉽게 상했다. 그래서 자연히 김치에도 소금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상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다. 소금뿐 아니라 고추에 포함된 캡사이신 성분도 세균 번식을 억제시킨다. 전라도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맵고 짠 고춧가루 김치가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맛에 다들 거부감을 나타냈으나, 먹을수록 점점 그 맛에 중독되어 나중에 다른 김치들은 싱거워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바람에 맛이 심심한 김치들이 시나브로 사라졌다.

 

 


어떤이들은 한국인의 위암 발병률이 높은 원인을 매운 고춧가루에서 찾기도 한다. 물론 고춧가루가 건강에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춧가루를 많이 먹는다고 해서 위암 발병률이 높다는 주장도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너무 단순하게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보다 고춧가루를 많이 먹는 멕시코나 인도 사람들의 위암 발병률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이렇듯 고추장은 이제 우리밥상에서 없어서는 않될 중요한 먹거리가 되었다. 어떤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 생각난다. 영국기자가 10년간 우리나라에서 생활하며 느낀점을 책으로 낸 것인데, 그 영국기자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매운 고추를 그것도 고추장에 찍어 먹는 사람은 한국사람들이 유일할 것이다.” ㅎㅎㅎ
대한민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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