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먹고 마시는 것들의 역사

설탕, 혀를 자극하는 황홀한 달콤함의 원조 설탕

율이파더 2021. 2. 1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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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혀를 자극하는 황홀한 달콤함의 원조 설탕 

 

 

 

설탕이 유럽에 처음 알려졌을 때에는 향신료로 구분되었다고 한다. 동방에서 전해진 값비싼 것이라 당시에는 음식에 첨가할 때도 다른 귀한 향신료들처럼 아주 조금만 사용했다. 단맛이 날까 말까 할 정도로만 조금씩, 설탕은 왕족이나 귀족들만이 살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 후인 기원전 334년, 그리스 북방에 위치한 마케도니아 왕국의 젊은 왕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그리스 연합군 5만여 명을 이끌고 페르시아 정복에 나선다. 

  누가 보아도 전쟁은 승산이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풍요로운 문명국가들의 영토를 전부 지배하고 있는 부유한 페르시아와 가난에 찌든 작고 보잘것 없는 나라 마케도니아가 싸운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승리할지 점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를 무너뜨렸다. 그것도 정면으로 세 번이나 승부를 걸어 모두 완승한 것이다. 먼저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페르시아군 2만여 명을 무찔렀고, 그다음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황제인 다리우스 3세가 직접 이끈 10만 대군을 격파했다.(기원전 333년)

  마지막으로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제국 전역에서 20만의 병력을 모아 절치부심했던 다리우스 3세를 또 한 번 완벽하게 꺾어버린 것이다(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 3세가 반역자 베수스에게 살해되자 그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러준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킨 파괴자가 아니라 오리혀 제국을 계승한 황제라고 공표하여 페르시아 지배층들의 신임을 얻었다. 또한 다리우스 3세의 딸과 결혼하고, 부하 장수들도 페르시아 귀족 여인들과 결혼하도록 하여 페르시아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도록 권유했다.

  가우가멜라에서 다리우스 3세가 인솔한 대군을 깨뜨린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수도인 페르세폴리스에 입성했고, 내친김에 더욱 동쪽인 인도까지 쳐들어갔다. 

  인도가 원산지인 사탕수수는 알렉산드로스의 원정과 이슬람 세력의 흥망성쇄에 따라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인더스 강 유역까지 다다른 알렉산드로스는 그곳에서 원주민들이 사탕수수를 끓여 갈색의 가루를 얻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 가루를 입에 넣은 그는 "벌 없이도 꿀을 얻을 수 있다니!" 하며 무척 놀랐다고 한다. 서방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감미료인 설탕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등장했다.

 

  16세기 이후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유럽 각국은 설탕을 얻기 위한 무역에 앞다투어 뛰어들었다. 스페인은 신대륙의 서인도제도에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농장을 만들었고, 네덜란드도 멀리 인도네시아에까지 진출해 곳곳에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세웠다. 그러면서 스페인이 쥔 국제 설탕 무역의 패권에 도전했다.

  설탕이 국제 무역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히트상품으로 자리를 잡자 서구 열강은 설탕 무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도전에 너도나도 나서게 된다. 이른바 설탕 대 항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설탕을 차지하기 위한 서구 열강의 패권다툼이 치열해 지자 현대 독일의 모태가 된 프로이센은 고민 끝에 사탕수수를 대체할 작물을 찾아냈다. 화학자인 안드레아스 마르그라프가 여태까지 식용이 아닌, 소나 돼지의 사료로 쓰이던 사탕무를 가열해 설탕을 추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따뜻한 날씨에서만 재배되는 사탕수수와 달리 사탕무는 비교적 습하고 찬 기후인 유럽에서도 잘 자랐고 병충해에도 강했다. 더욱이 사탕수수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자라 사탕수수처럼 노예들을 동원한 대규모 농장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 후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사탕무는 한층 각광을 받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영국의 경제에 타격을 입힐 목적으로 유명한 '대륙 봉쇄령'을 선언해 모든 유럽 국가가 영국과 교역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영국은 유럽에 설탕을 팔지 않겠다고 맞서는 것으로 보복했다. 그러자 영국산 설탕이 부족해져 당장 홍차나 초콜릿, 커피와 잼을 제대로 먹을 수 없게 된 많은 사람이 반발했다. 이런 불만을 무마시키려고 나폴레옹은 사탕무를 재배하는 농장주와 농부들에게는 4년 동안 세금을 면제해준다는 법안까지 만들어 사탕무 재배를 적극 장려했다.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해 몰락했지만 이후에도 유럽에서는 사탕수수보다 사탕무에서 추출된 설탕을 더 사용하게 되었다. 

 

 

 

  이토록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설탕은 20세기 중반이 되면서 지나친 당분 섭취가 비만과 고혈압 같은 성인병을 부른다는 연구 결과로 인해 소비량이 점차 줄어들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과자나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에 설탕 대신 옥수수에서 추출한 당분을 첨가하고 있다. 설탕을 생산하는 농장주들은 "옥수수로 만든 당분보다 천연 설탕이 건강에 더 좋다." 고 항변하지만, 굶주림보다 다이어트에 더 신경을 쓰는 현대인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마지막으로 설탕의 적정 섭취량에 대해서 알아보고 글을 맺으려 한다. 설탕은 칼로리가 높고 영양소는 없으며, 소화되는 과정에서 바로 흡수돼 혈당을 빨리 높인다. 혈당이 높아지면 성인병이 생기기 쉽고, 남은 당분은 지방으로 바뀌어 몸에 축적된다. 면역력도 떨어지고 인슐린 과다 분비로 저혈당이 되면 불안, 초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세계 보건기구가 권장하는 하루 설탕 섭취량은 27g인데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1.8배인 4.8g을 섭취하고 있다. 미국 심장학회에 따르면 하루에 6 티스푼, 100kcal를 넘으면 안 된다. 이는 과일이나 유제품에 포함된 설탕은 제외한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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